대구 선교의 아버지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 |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님은 1895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해 부산선교부에서 2년간 한국어와 지방풍습을 공부하고 1897년 대구 선교부로 파송됩니다. 선교사님들이 그 땅을 얻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선교사님들이 대구 성내에서 사역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3가지 S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4대문 성안에 사는 것 보다 밖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동산병원과 계명대 캠퍼스 자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루지 못해 몰래 시신을 묻었던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당시 고관들에게도 그 땅이 골치 아픈 땅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은 쉽게 그 땅을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땅은 대구지역 복음화의 요람으로 남아있습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와 사역을 감당하던 아담스 선교사님은 부인 닐 딕의 죽음으로 큰 아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스 선교사님은 그 고통가운데에서도 조선 사랑을 이어갑니다. 그는 4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그 아들들도 아버지의 조선사랑을 위해 한국에서 우리 민족과 아픔을 같이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십자가의 복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대구의 ‘사과 미인’이라는 말도 선교사님들이 대구에 사과를 심음으로 생겨난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와 병원, 학교를 세우고 우리 민족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의 삶을 살고 가신 분들입니다. 세계선교공동체 제공 (www.wmc.or.kr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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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유럽(영국중심)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는 자료입니다. | 이석헌 | 2010-12-08 |
9 | 비즈니스 선교 | 유대효 | 2008-06-16 |
8 | 소금 한 바가지와 면류관 | 박태현 | 2008-04-06 |
7 | 터키의 순교자들 = 달림보젝의 보고에서 | 박태현 | 2007-10-11 |
6 | 미얀마에 미전도종족 전도, | 박태현 | 2007-10-11 |
5 | 달아난 파리 떼 | 박태현 | 2007-10-11 |
4 | 대구 선교의 아버지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 ...................hosanna | sky | 2005-07-19 |
3 | 영국 교회에 대한 폭력 사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 | 이석헌 선교사 | 2005-05-12 |
2 | 2003년 정지문 선교사 파송예배 | 최성호 | 2004-08-30 |
1 | 2003년 정지문 선교사 파송예배 | 최성호 | 2004-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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