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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선교의 아버지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 ...................hosanna
2005-07-19 1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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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선교의 아버지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님은 1895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해 부산선교부에서 2년간 한국어와 지방풍습을 공부하고 1897년 대구 선교부로 파송됩니다.
그는 1898년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대구 제일교회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또한 대구선교부의 책임자로 많은 동역 선교사들을 필요로 했고 의사인 죤슨 선교사와 함께 제중원을 설립해 복음화를 이루게 되는데 이 병원이 지금의 동산병원입니다. 지금의 대구 제일교회와 동산병원 부지, 계명대학의 구 캠퍼스 모두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님이 선교사역 가운데서 얻은 땅들입니다.

선교사님들이 그 땅을 얻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선교사님들이 대구 성내에서 사역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3가지 S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Smell 입니다. 선교사님들은 하수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환경 속에 살면서 냄새로 인해 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또 하나는 Smoke 입니다. 쌩나무를 태워서 밥을 짓고 난방을 위해 불을 피웠기 때문에  그 연기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Sound 입니다. 서양인만 보면 짖어대는 개소리와 밤마다 무당 굿 소리에 곤혹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4대문 성안에 사는 것 보다 밖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동산병원과 계명대 캠퍼스 자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루지 못해 몰래 시신을 묻었던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당시 고관들에게도 그 땅이 골치 아픈 땅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은 쉽게 그 땅을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땅은 대구지역 복음화의 요람으로 남아있습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와 사역을 감당하던 아담스 선교사님은 부인 닐 딕의 죽음으로 큰 아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스 선교사님은 그 고통가운데에서도 조선 사랑을 이어갑니다.
제일교회 내에 남자 소학교를 세워 교육선교를 지속하면서 계성중학교를 세웠고 후에 계명대학까지 아담스 선교사님에 의해 세워지게 됐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복음전도기금으로 내놓고 1923년 대구선교부를 은퇴하기까지 근 40년 동안 한국선교를 위해 온 생애를 드렸습니다.

그는 4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그 아들들도 아버지의 조선사랑을 위해 한국에서 우리 민족과 아픔을 같이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십자가의 복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대구의 ‘사과 미인’이라는 말도 선교사님들이 대구에 사과를 심음으로 생겨난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와 병원, 학교를 세우고 우리 민족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의 삶을 살고 가신 분들입니다.
동산병원 선교관 앞에 자리 잡은 선교사님들의 무덤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민족이 됐는지를 알려주는 증표로 남아있습니다.

세계선교공동체 제공 (www.wm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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